얼마 전 친구에게 "주말에 가족 여행 일정 좀 정리해 줘"라고 말로 부탁하듯 휴대폰에 시켰더니, 메일함을 뒤져 예약 확인을 찾고, 지도에서 거리를 따지고, 달력에 일정을 넣어 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과장인 줄 알았는데, 요즘 스마트폰에 들어오는 AI는 정말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여러 단계를 알아서 처리하는 이른바 '에이전틱 AI(agentic AI)'다.

챗봇과 무엇이 다른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익숙해진 AI는 '물으면 답하는' 형태였다. 질문 하나에 답 하나. 반면 에이전틱 AI는 목표를 주면 거기까지 가는 중간 단계를 스스로 짠다. "이 메일들 요약해서 캘린더에 정리해 줘"라고 하면, 메일을 읽고, 핵심을 추리고, 날짜를 찾아, 일정으로 옮기는 일련의 행동을 연결해서 수행한다.

핵심 차이는 '대답'이 아니라 '대신 일하기'다. 비서가 질문에 답하는 사람에서, 일을 처리해 두는 사람으로 바뀐 셈이다.

실제로 2026년 들어 이 흐름이 일반 사용자 손에 닿기 시작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크롬용 제미나이를 넣어, 보고 있는 웹페이지를 요약하거나 질문할 수 있게 했고, 사용자를 대신해 양식을 채우는 기능까지 실험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간 '제미나이 스파크'는 메일·드라이브·캘린더를 오가며 여러 단계 작업을 처리하는 상시 비서를 표방한다. 메타 역시 자사 AI 앱과 메신저 전반에 새 모델을 얹으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왜 지금 '폰 안의 비서'가 가능해졌나

두 가지가 맞물렸다. 하나는 모델이 단순한 문장 생성 너머로, 여러 도구를 순서대로 불러 쓰는 능력을 갖추게 된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 똑똑함의 상당 부분이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기기 안에서(온디바이스) 도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생성형 AI를 지원하는 스마트폰 비중이 2026년 출하량의 절반 가까이에 이를 것으로 본다. 고급 기종에서는 AI가 사실상 기본 기능으로 자리 잡는 셈이다.

기기 안에서 처리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다. 사진, 메시지, 일정 같은 민감한 정보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도 다룰 수 있어 응답이 빠르고,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한결 안심이 된다. 비행기 모드에서도 일부 기능이 도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반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거창한 기술 용어를 걷어내면, 결국 "잔손이 많이 가던 일을 한 문장으로 끝내는" 변화다. 몇 가지 장면을 그려 보면 이렇다.

예전 방식에이전틱 AI 방식
메일 열어 일일이 읽고 캘린더에 옮김"이 메일들 일정으로 정리해 줘" 한마디
사진첩에서 여행 사진 직접 골라 앨범 생성"지난 제주 여행 사진만 모아 줘"
가입 양식 항목마다 손으로 입력AI가 저장된 정보로 자동 작성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AI가 내 정보를 학습해 양식을 대신 채운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권한을 내준다는 뜻이다. 무엇을 대신하게 할지, 어디까지 맡길지는 사용자가 정해야 한다. 자동화가 편리할수록, '확인 없이 실행'과 '실행 전 한 번 묻기' 사이의 설정을 점검해 두는 습관이 중요해진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새 기능이 쏟아질 때마다 '나만 뒤처지나' 싶지만, 이런 변화는 대개 천천히 스며든다. 지금 당장 모든 걸 AI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메일 요약, 사진 정리처럼 실패해도 손해가 작은 일부터 한두 가지 시켜 보고, 결과가 믿을 만한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기술은 결국 우리의 시간을 돌려주려고 존재한다. 알아서 일하는 비서가 폰 안에 들어온다는 건, 잔일에 빼앗기던 저녁 시간을 조금 더 나에게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구에 휘둘리지 않고 똑똑하게 부리는 쪽,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