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일을 시작한 지 반년 된 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 의뢰가 들어왔는데, 얼마를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30만 원이라고 했어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 일은 예상보다 두 배 오래 걸렸고, 수정 요청이 다섯 번 왔고, 끝날 무렵에는 일보다 사람이 먼저 지쳐 있었습니다. 문제는 30만 원이라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본인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하루를 어떻게 쓸지, 어떤 손님을 만날지, 이 일을 몇 년이나 계속할 수 있을지가 전부 그 숫자에 묶여 있습니다. 오늘은 프리랜서와 1인 사업자가 자기 일의 값을 정할 때 쓸 수 있는 기준을 정리해 봅니다.

싸게 부른 가격은 싸게 대접받는다

가격을 낮게 부르면 일이 많이 들어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가격은 "이 사람은 급하구나" 또는 "이 정도 수준이구나"라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렇게 들어온 의뢰는 대체로 요구가 잦고, 일정이 촉박하고, 다음에도 같은 가격을 기대합니다.

더 큰 문제는 회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 번 30만 원에 해준 일을 다음에 60만 원으로 올리려면, 상대는 값이 두 배 올랐다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60만 원이었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가격은 내가 얼마를 받고 싶은지가 아니라, 이 일을 몇 년이나 계속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숫자입니다.

먼저 '내 시간의 원가'를 계산한다

가치니 브랜드니 하는 이야기는 그다음입니다. 출발점은 산수입니다. 내가 한 시간을 팔 때 최소 얼마를 받아야 손해가 아닌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가상의 예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목표 연 소득을 4,000만 원으로 잡고, 사무실·장비·소프트웨어·보험 같은 연간 고정비를 600만 원이라고 가정합니다.

항목가정값
목표 연 소득4,000만 원
연간 고정비600만 원
세금·4대보험 여유분(약 20%)920만 원
필요 총매출5,520만 원
연간 근무 주46주 (휴가·명절 제외)
주당 청구 가능 시간20시간

여기서 핵심은 마지막 줄입니다.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해서 40시간을 청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견적서 쓰고, 메일 답하고, 세금계산서 끊고, 영업하는 시간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청구 가능한 시간은 전체 근무 시간의 절반 안팎인 경우가 많습니다.

5,520만 원 ÷ (46주 × 20시간) = 시간당 약 6만 원. 이 숫자가 내 바닥선입니다. 이보다 낮게 부르는 순간, 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저축을 헐어 손님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시간이 아니라 '결과'에 값을 매긴다

바닥선을 알았다면, 그다음은 시간 단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시간당 청구에는 이상한 함정이 있습니다. 실력이 늘어 같은 일을 절반의 시간에 끝낼수록 수입이 줄어듭니다. 숙련을 벌하는 구조인 셈이죠.

그래서 가능하면 건당·프로젝트 단위로 값을 매기는 편이 낫습니다. 이때 기준은 "내가 몇 시간 쓰는가"가 아니라 "이 일이 상대에게 무엇을 만들어 주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작은 가게의 주문 페이지를 손봐서 이탈률을 줄였다면, 그 가게 입장에서 그 작업의 값은 내가 쓴 여덟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의 매출입니다.

물론 그 효과를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견적을 말할 때 시간이 아니라 결과를 먼저 말하는 습관만으로도 대화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이거 하루면 돼요"보다 "주문 흐름을 정리해서 이탈 지점을 줄이는 작업입니다"가 훨씬 정확한 설명이기도 하고요.

가격표는 하나가 아니라 셋으로

단일 가격은 "할지 말지"를 묻습니다. 상대는 예/아니오 중 하나를 고르게 되고, 예산이 빠듯하면 그냥 아니오가 됩니다. 반면 선택지를 세 개 주면 질문이 "어느 것으로 할지"로 바뀝니다.

  • 기본: 꼭 필요한 것만. 가장 낮은 가격이지만 바닥선 위.
  • 표준: 대부분이 고르는 구성. 여기서 이익이 나도록 설계.
  • 확장: 사후 관리·추가 작업 포함. 실제로 안 팔려도 괜찮습니다.

확장 안이 있으면 표준 안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확장 안을 고르는 손님이 나타납니다. 세 안 모두에 포함 범위와 제외 범위를 한 줄씩 적어두는 것도 잊지 마세요. 수정 횟수, 납품 형식, 추가 요청 시 비용 — 이 세 가지만 명시해도 분쟁의 대부분은 사라집니다.

올릴 때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격 인상은 대부분 미루다 놓칩니다. 몇 가지 신호가 오면 올릴 때입니다. 문의를 거절할 일이 잦아졌을 때, 일정이 두 달 앞까지 차 있을 때, 같은 일을 예전보다 훨씬 잘하게 됐을 때.

기존 거래처에는 갑작스러운 통보 대신 여유를 줍니다. "다음 달 계약부터 단가가 조정됩니다. 지금 진행 중인 건은 기존 조건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과하지 말고, 길게 설명하지도 마세요. 미안해하는 문장은 가격이 협상 가능하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깎아달라는 요청에는 금액 대신 범위를 조정하는 것으로 답합니다. "예산에 맞추려면 이 부분을 다음 단계로 미루는 방법이 있습니다." 값을 그냥 깎으면 내 일이 그만큼 쌌다는 뜻이 되지만, 범위를 줄이면 가격 기준은 그대로 남습니다.

정리하며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목표 소득과 고정비로 시간당 바닥선을 구한다. 둘째, 시간이 아니라 결과 단위로 견적을 낸다. 셋째, 선택지를 셋으로 만들고 포함·제외 범위를 적는다. 넷째, 때가 되면 사과 없이 올린다.

값을 정하는 일이 어색하고 미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직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숫자에 근거가 생기면 말투가 달라지고, 말투가 달라지면 상대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오늘 저녁 삼십 분만 들여서 내 시간의 바닥선을 한번 계산해 보세요. 그 숫자 하나가 앞으로의 일 년을 꽤 다르게 만들어 줄 겁니다.

본문의 금액과 계산은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예시입니다. 세금·보험료 등 구체적인 사항은 작성 시점 기준이며, 개별 상황은 세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