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습관처럼 음악 앱을 켜고 '나를 위한 추천'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한 정거장, 두 정거장을 지나도 어딘가 비슷비슷한 곡들이 이어진다. 분명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왜인지 마음이 심심하다. 좋아하는 것만 계속 듣다 보니, 좋아할 수도 있었던 것을 만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지난 10여 년 사이 완전히 바뀌었다. 앨범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던 시대에서, 손가락 하나로 수천만 곡을 넘나드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선택지가 무한해지자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좁은 울타리 안에서 맴돈다. 오늘은 그 울타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어렵지 않은 방법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왜 추천 목록만 들으면 취향이 좁아질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천은 대체로 '당신이 좋아한 것과 비슷한 것'을 찾아준다. 내가 자주 들은 곡, 끝까지 들은 곡, '좋아요'를 누른 곡을 기준으로 비슷한 분위기·장르·템포의 노래를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편리하고, 실패가 적다.
문제는 이 구조가 본질적으로 '안전지대'를 강화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내가 발라드를 많이 들으면 알고리즘은 계속 발라드를 권하고, 그럴수록 내 청취 기록은 더 발라드로 채워진다. 취향이라는 원은 점점 또렷해지지만, 그만큼 작아진다. 새로운 장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줄어드는 셈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은 알지 못한다.
이건 알고리즘의 잘못이 아니다. 추천 시스템의 목적은 '지금 만족'을 높이는 것이지, '취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일은 어느 정도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알고리즘을 '거스르지 말고' 영리하게 쓰는 법
추천을 끊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잘 쓰면 훌륭한 안내자가 된다. 핵심은 알고리즘에게 새로운 신호를 일부러 던져주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평소 안 듣던 장르의 곡을 의도적으로 몇 곡 끝까지 들어보는 것이다. 재즈든 시티팝이든 국악 크로스오버든, 한두 곡이라도 완주하고 '좋아요'를 눌러두면 추천 목록의 결이 조금씩 달라진다. 알고리즘은 결국 내가 준 데이터로 학습하기 때문에, 입력이 바뀌면 출력도 바뀐다.
또 하나, 대부분의 서비스에는 '이 곡과 비슷한 곡으로 채우기'나 '라디오' 기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낯선 곡을 씨앗으로 삼아 라디오를 돌려보자. 출발점이 달라지면 도착점도 달라진다. 익숙한 곡에서 출발하면 익숙한 곳에 도착할 뿐이다.
사람의 손을 거친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라
알고리즘이 놓치는 것을 채워주는 건 결국 사람이다. 요즘은 음악 애호가나 에디터가 직접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난다. '비 오는 오후의 카페', '90년대 한국 인디', '운동할 때 듣는 시티팝'처럼 상황과 감정, 시대를 기준으로 묶인 목록들이다.
이런 플레이리스트의 장점은 맥락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비슷한 곡을 나열한 게 아니라, 만든 사람의 취향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전혀 몰랐던 아티스트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마음에 드는 목록을 하나 발견하면, 그걸 만든 사람의 다른 플레이리스트까지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취향이 맞는 사람 한 명을 찾는 것이 알고리즘 백 번보다 나을 때가 있다.
친구나 지인에게 "요즘 뭐 들어?"라고 묻는 아날로그한 방법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의 추천에는 그 사람의 지금이 담겨 있어서, 데이터가 흉내 내기 어려운 온기가 있다.
한 아티스트에서 '계보'를 따라 내려가기
새 음악을 깊게 파고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좋아하는 아티스트 한 명을 정해 그 주변을 탐색하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갈래다.
먼저 그 아티스트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뮤지션을 찾아본다. 인터뷰나 소개 글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걸 따라가면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반대로 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나 피처링 뮤지션을 살펴보면, 비슷한 감성의 동시대 음악으로 옆걸음 칠 수 있다.
또 하나 유용한 건 커버곡과 리메이크다. 좋아하는 곡의 원곡을 찾아보거나, 반대로 그 곡을 다시 부른 다른 가수의 버전을 들어보는 것이다. 같은 멜로디가 전혀 다른 색으로 칠해지는 걸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목소리와 장르에 귀가 열린다.
| 탐색 방향 | 방법 | 얻는 것 |
|---|---|---|
| 위로 | 영향받은 아티스트 찾기 | 취향의 뿌리·원류 |
| 옆으로 | 함께 작업한 뮤지션 보기 | 동시대 비슷한 감성 |
| 다르게 | 커버·리메이크 듣기 | 같은 곡의 새로운 해석 |
가끔은 '앨범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으로, 조금은 느린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골라, 셔플을 끄고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순서대로 들어보는 것이다.
앨범은 원래 하나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곡의 배치, 사이사이의 짧은 연주, 분위기의 고조와 이완까지가 하나의 이야기다. 인기곡만 골라 듣던 방식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곡들이 그 사이에 숨어 있다. 히트하지 못한 3번 트랙이 사실은 그 앨범의 심장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일은 결국 약간의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추천 버튼 하나면 충분한 시대에, 굳이 낯선 곡을 찾아 듣고 앨범을 처음부터 넘겨보는 건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곡이 한동안의 계절을 통째로 물들이는 경험, 그건 알고리즘이 대신해주기 어려운 기쁨이다.
오늘 밤엔 늘 누르던 그 추천 버튼 대신, 낯선 플레이리스트 하나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려온 노래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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