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잠깐 밖에 나섰을 뿐인데, 아스팔트에서 훅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턱 막힌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등줄기가 젖고, 머리가 핑 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여름날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불쾌함을 "원래 여름이니까"라며 넘기다가, 어느 순간 응급실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매년 적지 않다. 온열질환은 조용히,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몸을 무너뜨린다.
온열질환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더위 먹었다"고 뭉뚱그리는 증상 안에는 여러 얼굴이 숨어 있다. 가장 가볍게는 땀띠처럼 피부에 붉은 발진이 돋는 열발진, 손발과 발목이 붓는 열부종이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근육이 뭉치고 쥐가 나는 열경련, 어지럽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열실신이 찾아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온몸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는 열탈진을 지나면, 가장 위험한 열사병에 이른다. 열사병은 체온이 40도를 넘고, 오히려 땀이 나지 않아 피부가 뜨겁고 건조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계는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이다.
땀이 멈추고 피부가 오히려 건조해진다면, 그것은 "괜찮아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몸의 냉각 장치가 고장 났다는 위험 경보다.
왜 어떤 사람은 더 위험할까
같은 더위 속에서도 온열질환은 사람을 가려 찾아온다. 우리 몸은 땀을 흘려 열을 식히는데, 나이가 들면 이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갈증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르신은 이미 몸이 데워지고 있어도 "아직 견딜 만하다"고 느끼기 쉽다.
질병관리청도 이런 점을 고려해 취약한 대상별로 예방 행동요령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 어르신과 어린이, 임신부는 물론이고 심뇌혈관질환·콩팥병·당뇨병·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콩팥이 약한 사람은 수분 섭취량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일부 약을 복용 중이라면 체온 조절이나 탈수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일반적인 조언조차, 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주치의와 상의가 필요할 수 있다.
결국 세 단어, 물·그늘·휴식
복잡해 보이지만 예방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바로 물, 그늘, 휴식 세 가지다. 이 기본 수칙만 철저히 지켜도 대부분의 온열질환은 막을 수 있다.
물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벌컥 들이켜기보다 조금씩 자주가 원칙이다. 다만 커피나 술은 오히려 몸의 수분을 빼앗으니 더위 속에서는 줄이는 편이 낫다. 그늘은 한낮의 직사광선을 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패다. 야외 활동이 불가피하다면 챙 넓은 모자나 양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다니자. 휴식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조금만 더"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특히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는 야외 활동과 실외 작업을 되도록 줄이거나 멈추는 것이 좋다. 체감온도가 33도를 넘는 폭염주의보에는 매시간 10분씩, 35도를 넘는 폭염경보에는 15분씩 그늘에서 쉬어가는 것을 하나의 리듬으로 삼아보자.
쓰러진 사람을 만났을 때
만약 주변에서 누군가 더위에 쓰러졌다면, 몇 가지 조치가 생명을 가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환자를 시원하고 그늘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다음 옷을 느슨하게 풀고, 몸에 물을 뿌린 뒤 부채나 선풍기로 바람을 보내 증발을 돕는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처럼 굵은 혈관이 지나는 곳에 얼음주머니를 대면 체온을 더 빠르게 낮출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것이 하나 있다. 환자의 의식이 없다면 절대 물이나 음료를 억지로 먹이지 말아야 한다. 삼키지 못하고 기도로 넘어가 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뚜렷하다면 시원한 물이나 스포츠음료를 조금씩 마시게 하되, 조금이라도 반응이 흐릿하거나 체온이 너무 높다면 지체 없이 119에 신고해야 한다.
냉각과 신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열사병에서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몇 분이 회복과 후유증을 가른다.
무더위를 견디는 하루의 습관
온열질환은 유별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병이 아니다. 잠깐의 방심,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이 쌓여 사고로 이어진다. 아침에 나서기 전 물병을 챙기고, 한낮에는 무리한 일정을 피하고, 몸이 무겁고 어지러우면 그늘에서 잠시 멈추는 것. 거창하지 않은 이 작은 습관들이 한여름을 안전하게 건너는 다리가 된다.
정리하자면, 온열질환의 얼굴은 여럿이지만 방패는 물·그늘·휴식 세 단어로 충분하다. 그리고 위급한 순간에는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체온을 식히며, 의식이 없을 땐 억지로 먹이지 말고 곧바로 119에 알리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글은 작성 시점의 일반적인 예방·응급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기저질환이 있거나 증상이 심하다면 반드시 의료진의 안내를 따르시길 권한다. 올여름, 부디 시원하고 건강하게 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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